2007년 07월 20일
지난 일요일에는 이런저런 다툼이 있었고 월요일 새벽, 잠을 자기 위해 전화통화를 중단했는데 그게 문제가 되어 그녀가 나와 연락을 끊기로 결심했다. 아무튼 이 문제는 배경이 산더미같기 때문에 쉽게 요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보자면 내가 그녀가 바라는 인간형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마침내 자기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했을때 내가 그만 얘기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사흘 저녁을 연락두절에 시달리다 (전화를 스물 다섯번 쯤 했을 것이다) 마침내 어젯밤, 그녀의 아파트로 갔다. 그녀의 친구들과 오빠의 조언과 도움을 받고 마지막엔 그녀와 이야기를 해본 후 일단은 화해. 물론 사건의 계기가 되었던 갈등이나 성격차이가 해소된 것은 아니니까 '정말은 이제부터'라고 할만하긴 한데, 어쨌든 연락두절보다는 나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추진력, 혹은 부양력을 잃지는 않을 생각.
7월 27일부터 이글루에 실명제가 도입된다고 하는데 한국신용평가협회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나는 더이상 이글루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외국인으로서 등록을 하고 ID를 스캔해서 보내주는 방식으로 하면 될수도 있겠지만 그런 짓을 하면서까지 이글루 서비스에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하긴 이것도 3년 넘게 써왔으니 나름 정든 곳이긴 하지만.
# by 준치군 | 2007/07/20 00:26 | 트랙백 | 덧글(4)
2007년 07월 11일
곤조의 'LAST EXILE'을 보고 있다. 지금 6편? 작화도 좋고 모션이나 CG도 괜찮고, 내용도 흥미있고 아무튼 재미 쏠쏠한 애니메이션. 그 외에 여름납량특집으로 요 며칠 무서운 이야기들을 많이 읽었다. 한 200편 정도. 덕분에 어두운 시간이 되면 약간 겁을 먹기도 하고 있다. 화장실에 갈때마다 뒤에 뭔가 있을지도 모름. 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 http://thering.8con.net/tt/체험담 게시판에서 이틀을 보냈음.
# by 준치군 | 2007/07/11 23:56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7월 06일
이틀동안 간간히 내리는 비에 젖은 냄새가 나는 아침.
지난 2일에는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되기로 했다가, 다음날인 3일엔 '홀로 서야하니까 당분간 친구로 있어달라'는 말을 들었다. 그 후에 다시 대쉬해달라고. 그러면 안되냐고 울면서.
하루만에 깨어진 관계라면 그 어설픔에 차라리 웃기달까. 막 웃다가 그 후에 쓸쓸해지는 느낌이랄까.
먼 훗날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 by 준치군 | 2007/07/06 00:15 | 트랙백 | 덧글(3)
2007년 06월 16일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나 부랴부랴 출근하는 길.
수면을 충분히 취하면 냉정해지고 사고가 내면화되어 말수가 줄어든다. 반대로 잠이 부족할때는 느끼는 것이나 행동이나 즉각적이되어 마치 얕은 물가를 찰방거리고 다니는 것 같달까. 그동안 행여 경솔한 실수가 있었을까- 한숨을 내어 본다.
사실 별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마음에 품는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는 진실이 함께 있다.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런저런 대답을 듣는다.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 슬픔은 그곳에 침전시킨다. 나 자신에게 말한다.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고 듣고 싶지 않은 것들을 듣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라고. 그리고 아마 괜찮을거야. 용기를 가질 것.
# by 준치군 | 2007/06/16 05:38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6월 02일
<2007년의 독서>
01. A Game Of Thrones - George R.R. Martin 02. A Clash Of Kings - George R.R. Martin 03. A Storm Of Swords - George R.R. Martin 04. 모략 - 차이위치우 외 34인 05. 미녀들의 신화 - 김남석 엮음 06. 귀신잡는 남자 - 박용운 07.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화가 이중섭 생각] - 김광림 08. 시인을 꿈꾸는 나무 - 미셸 뤼노 08. 음식 궁합 - 유태종 09. 이런 사원들이 문제사원들이다 - 김광경 10. 증상으로 아는 성인병 - 니타이 후지오 11.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12. 어, 그래? - 이종주 김경훈 편저 13. 125세까지 걱정말고 살아라 - 유병팔 14. 마지못해 한 이혼 뜻밖의 행복 - 조재구 15.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뜨면 - 조진태 16.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 엄홍길 17. 우리 한때는 별이 되었나 - 차범석 외 40인 18. 성공을 위한 히트 유머 시리즈 - 웃음을 찾는 사람들 엮음 19. 법정에 나타난 인생풍경 - 김대억 20. 흐르는 세월을 붙들고 - 이동렬 21. 우리 동네 아이들 - 나지브 마흐프 22. 우리가 산다는 의미는 - 유경환 23. 유령신사 - 시바타 렌자부로 24. 기계 - 남상천 25. 바스카일가의 사냥개 - 코난 도일 26. 걷기건강 - 안상욱 27. 솔직한 여자가 사랑도 잘한다 - 이은미 28.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 이기담 29. 몽골의 초원 - 시바 료타료 30. 바깥 사연들 - 김성일 31. 노태우 대통령전 - 왕옥흔(王鈺欣)* 32.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 정민 33. 달의 제단 - 심윤경 34. 수피우화 - 김남용 35. 삶의 빈자리를 생각하며 - 앙드레 모로와 36.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 알렌 치넨 37. 때론 아내의 방에 나를 닮은 도둑이 든다 - 안성호 38. 한여름밤의 고전산책 - 박서림 39. 나의 누이와 나 - 프레드릭 니체 40. 강의 - 신영복 41. 벚꽃도 사쿠라도 봄이면 핀다 - 한수산 42. 감동을 주는 대화와 연설 - 데일 카네기 43. 한국인의 민속 문화 1 - 이규태 44. 유목민 이야기 - 김종래 45.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미치 앨봄 46.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트 에코 47. 학의 다리를 자르지 마라 (장자) - 김한성 48. 잠자는 사자의 털끝을 어이하리 (맹자) - 김한성 49. 사람보다 아름다운 꽃 이야기 - 오병훈 50. Moon Palace - Paul Auster 51. 선생님의 가방 - 가와카미 히로미 52. 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 - 이어령 53. 무심 - 문화영 54. 하루 한번의 사색 - 레오 톨스토이 55. 사랑에 관한 1000자 고백 - 안현민 56. 내 아내의 남편을 찾습니다 - 폴 오스터 57.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 리차드 칼슨 58. 은빛비 - 아사다 지로
<읽다가 그만두거나 아직 못 읽은 책, 하지만 도서관에 갖다 줘야 하는 책> 01. 바둑실력테스트 3 사활의 급소 02. A Feast For Crows - George R.R. Martin 03. The Scarlet Gang of Asakusa - Yasunari Kawabata 04. Beauty and Sadness - Yasunari Kawabata 05.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중국인이라 발음을 알 수 없어 한중병기
# by 준치군 | 2007/06/02 08:51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6월 01일
2007년 5월은 나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는 여자와 자주 보고, 많은 얘기하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잔뜩 했던 달이었다. 책을 스무권 정도 읽기도 했다.
그녀와는 진짜 많은 얘기 했으며 오랜만에 어떤 사람에 대해 조금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단점과 장점들을 두루 살피고 그 엽기적인 실상과 가공할 마각까지 모두 함께 한 인간을 소화시켜보는 중. 많은 얘기는 했지만 수다가 많아 누가 무엇을 물어도 거의 대답해주는 그런 사람이라 전혀 내가 특별한 것은 아니고, 고백이랄까, 아무튼 그런건 열 다섯번 정도 사양당했으며 과연 일백번을 채우게 될지도 궁금한 일이다. 그녀의 '죄송해요'는 계속해서 듣다보니 언젠가는 우리 관계에서 무의식적 습관이 되어버릴까 두렵기는 하지만, 그러나 내가 그 '죄송해요'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굉장하고 훌륭한 일인가. 그건 습관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녀가 허락을 안해줘서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지는 못하고,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는 셈인데 내 자신이 초라하거나 불쌍하게 느껴질때까지는 해봐야겠지.
그렇게 열심은 아니다.
그녀의 애정과 나의 애정은 그 질과 양이 달라서, 과연 서로에게 완전한 충족은 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욕심이 많다는 점에서는 꽤나 비슷하지만 정도나 방식은 상이하고, 무엇보다 내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온건함을 바란다면 그녀는 완전하고 커다란 화합을 꿈꾼달까. 뭐, 그녀는 그녀 뜻대로 살아가야 하고 나는 내 나름대로 어울려야 한다. 그녀가 나를 위해 뭔가 해줄 것을 바라지 않고, 그녀를 귀찮게 굴지 않고, 그 어딘가에 있는 그녀의 중심 가까이 뿌리내린다면.
그녀는 바뀌고 나는 그대로라도 슬픈 일.
# by 준치군 | 2007/06/01 03:22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5월 16일
어제는 몇번이나 엄청난 소나기가 내린 하루였는데 이런 날씨가 목요일까지는 계속된다고 한다. 밤에는 우산을 들고 비 내리는 주택가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늘 다니는 길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갔는데도 경이로운 장면들이 연거푸 나타났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새로지은 타운하우스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마주치는 예배당. 느닷없이 풍성해지고 경쟁하듯 꽃 피워낸 커다란 나무들. 비가 쏟아질때면 사위에 온통 물소리 뿐이고 지붕들과 나무들이 푸드덕거렸다. 비는 내리거나 그치거나 삽시간이었으나 피부에 느껴지지 않는데도 고여있는 물웅덩이에는 수많은 파문 일고 있기도 했다.
MP3 플레이어로 밥 시거의 'Greatest Hits'를 들으며 바람을 정면으로 맞거나 흘려보내거나 했다. 때때로 우산을 들고 춤도 추었고 비가 그쳤을 때는 음악에 맞춰 접은 우산으로 기타를 치고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누군가 행인이 있어 마주쳤다면 상당히 겸연쩍었을테지만 마치 내면의 고독이 밖으로 구현된 듯 비어있어 외롭지 않고 자유롭고 풍성한 거리였다.
나중에는 '비가 오는 주택가'라는 것을 문장으로 표현해보고자 밤을 걸으며 계속해서 언어를 더듬었다. 그대는 미는가 두드리는가, 구름끼어 밝은 도시의 밤하늘. 여러 세계의 틈새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하나의 진실되고 아름다운 표현이 있어 내가 그것을 불러낼 수 있다면 그는 나의 오래되고 다정한 친구처럼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내가 죽은 후에 그들만이 남아 가끔씩 먼지 쌓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줄지도 모르지.
먼 빛마다 긴 꼬리를 끌고, 그림자마다 젖은 생명을 품다.
5월 비오는 밤의 준치군.
# by 준치군 | 2007/05/16 23:56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5월 16일
어제는 안좋은 몸을 끌고 걸어서 우체국에 갔다 왔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약을 먹은 후 '아, 소포 찾으러 가야지' 후드 스웨터를 뒤집어 쓰고 비틀비틀 집을 나선 것이다. 우체국은 딕슨과 이슬링턴의 교차로에 있었고 우리집에서 걸어 오가자면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햇빛은 따스하고 바람은 선선한 날이었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평일, 동네의 이른 오후. 고등학교의 운동장에서는 스무명 정도의 여자아이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한쪽은 붉은띠를, 한쪽은 노랑띠를 허리에 매고 선생님의 주도로 무언가 경기를 시작하려는 참이었고, 잔디로 되어있는 운동장 한편에 온통 피어있는 민들레들과, 테니스 코트를 둘러싼 철책에 누군가 매어놓은 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꽤 어중간한 시간인데 시간을 때우는지 학교 근처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맨채 어슬렁거리는 녀석들이 많았다. 이제 지나친 운동장에서 여자애들 외치는 소리, 멀고 커다란 하늘에서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평일오후'가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거대한 적막함의 표면을 긁듯이 가끔씩 끼어들거나 하고 있었다.
버스가 한 대 다가와 서더니 할아버지 한 사람이 내려서고, 몇 사람 타지 않은 버스는 잠시 나를 위해 정차해있는 듯 하다가 내가 운전사와 마주친 시선을 피하자 출발했다. 햇빛을 잔뜩 받아 빛나던 텅 빈 버스가 지나가자 그 자리는 한결 더 환하고 한결 더 비어있고, 주위는 갑자기 조용해져 차라리 머슥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대로도 괜찮은걸까.
나는 니체의 '내 누이와 나'를 들고 있었는데, 니체에게 그다지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그가 뭐라고 말하건 그저 그랬다는 느낌으로, 확실히 이 사상가가 미쳤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가운데 혹시 건질 것이 있나 없나 폐품함을 뒤적이는 기분이었다. 프러시아 백작부인과의 관계가 어땠다느니, 누이와의 관계를 숙모는 알고 있었다느니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냥 책을 집어 치우고 싶었지만 나는 우체국에 가는 중이었고 마땅히 책을 집어 치울 장소가 없었다. 실은 내 자신의 증상이 감기인지 알러지인지 잘 구별이 안가서 감기, 독감용의 네오 시트런(Neo Citron)과 베니드릴을 같이 먹었는데, 양쪽 다 잠이 오게 하는 성분이 들어있었고 덕분에 쏟아지는 수마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길고 완만하게 올라가는 주택가의 언덕길을 눈을 뜬 시간보다 감은 시간을 길게 하며 흐느적거리며 걸어갔다.
블록버스터 비디오가게가 있는 작은 상점가를 지나 공동묘지의 철 울타리를 손가락으로 느끼고, 1930년에 태어나서 넉달만에 죽은 한 아기의 묘비에, '우리들의 아들 스티븐을 추모하며' 쓰인 것이라든가, 그 옆에 그 부모들, 형 오빠보다 훨씬 오래 살다가 죽은 동생들이 무리지어 묻혀 있는 것도 보았다.
# by 준치군 | 2007/05/16 04:37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5월 13일
두명째인지 세명째인지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엄청 반갑게 받아주시고, 통화상대에게 이건 데이트가 아니라고,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도 듣고, 나중에 무슨 얘기였는지 설명까지 추가로 받고, 공원에 가기에 앞서 자기 언동 때문에 상대 남자가 오해를 많이 한다는 말씀이 커다란 현수막처럼 배경으로 깔려있는 가운데, 나의 오해도 이해도 더불어 깊어가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다 잘해주고, 누구에게나 다 잘 맞춰주는 사람. 그 자체로는 칭찬을 받을만한 미덕이겠는데 내 자신이 그 중의 하나가 되어서는 조금 딱한 일이다. 정말 일급의 바람둥이라면 그 사람들 모두에게 상대만이 특별하다는 인식을 남길 수 있을터인데 그녀의 경우는 조금만 수련하면 가능한 경지일 것 같다.
질투를 하자면 속 좀 상하겠으니 건강을 생각하자. 어머니날 선물을 산다는 핑계로 아침부터 불러낸 그녀는 예쁘고 상냥했고, 선물구입 후 밥 먹고 차 마시고 날씨가 너무 좋아 들렀던 공원에서도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내가 생각도 없이 (그리고 사실 계획도 없이) 공원길로 데려갔기 때문에 부숴먹은 구두가 저번에 이어 오늘로 두개째. 하나 선물해야 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경우는 선물이 아니라 배상 아닐까) '내가 고른게 누구 마음에 들리가 없잖아?' 망설여지기는 한다.
여러번 봐도 시들지 않고 그 농도만 짙어가는 그녀에 대한 내 마음에 비해 나는 그냥 '아는 분' 이라거나 '친절하신 분', '너 모르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뿐이고, 나로서는 가까이 갈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일까. 되새겨 떠오르는 지난 하루의 기억은 지나치게 우린 찻물처럼 씁쓸하다.
허나 때때로 산뜻한 웃물보다 앙금까지 남아있는 아랫물에 더 정이 가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일까. 그러고보니 그 마지막 한 방울을 따로 일컫어 '진국'이라 부르지 않던가.
'상사병'을 한자로 '서로 생각하는 병'이라고 쓰는 것은 좀 웃기고 이상한 일이다. 마땅히 항상 상자를 써서 '항상 생각하는 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거기엔 내가 모르는 배경이나 숨은 의미라도 있는걸까?
오늘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숲길을 걸을 수 있었으며,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 맛을 궁금해해왔으나 딱히 계기가 없어서 여태까지 사진으로만 봐온 고구마 케이크란걸 실제로 시식해보기도 했다.
'먼 먼 옛날의 풍뎅이 죽음에도 같이 울면서'.
고맙습니다. 하이구.
# by 준치군 | 2007/05/13 14:56 | 트랙백 | 덧글(5)
2007년 05월 10일
이번 주말에는 토론토 심포니 지원자 협회와 뵈센돌퍼가 주관하는 '뵈센돌퍼 전국 피아노 콘체르토 대회'가 있다. 대회는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에 걸친 예선과 일요일의 본선으로 나뉘고, 캐나다 각지에서 출전한 16세 이상 23세 이하의 청년들이 총상금 일만천불(1등 4000불)과 2007년 11월에 있을 토론토 필아모닉과의 협연 기회등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장소는 토론토 대학의 에드워드 존슨 빌딩. 입장료는 무료. 총 출전자수는 29명으로 예선은 1인당 30분간의 피아노 독주, 본선은 오케스트라와의 협주로 이루어진다. 스케쥴은 금요일 아침 아홉시 반에서 오후 여섯시 반. 토요일 아침 열시에서 오후 다섯시 반. 일요일 본선은 정오부터, (모호하게도) 끝날때까지. 이런 내용으로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그녀에게 여쭈었으나 거절당했다. 사실 나야 불러낼 핑계라면 무엇이든 좋았던거고 피아노 경연 대회는 마침 어제 오후 라디오에서 광고를 들은 후 '이거 괜찮겠다-' 한 것에 불과한데, 그래도 지금은 혼자서라도 가볼까 말까 하고 있는 중. 토요일까지는 며칠 남아있으니까(금요일 스케쥴은 직장인에겐 무리) 지금부터 같이 갈 사람을 찾자면 찾겠지만, 사실 그녀 말고는 이런 이벤트에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 없다. 남자를 불러내자니 이상하고 여자를 불러내자니 쓰잘데없고, 그냥 책이나 한두권 들고 가서 음악을 들으며 독서삼매 하다 오면 좋을 것 같은데... (회장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참가자들에게 무례한 일이겠지) 아무튼 라이브 클라식 음악을 공짜로 들을 기회는 흔한게 아니니까.
# by 준치군 | 2007/05/10 07:10 | 트랙백 | 덧글(1)
2007년 05월 08일
어제는 알찬 일요일 저녁을 보냈고, 덕분에 오늘의 3마일 달리기는 22분 46초. 기존의 개인기록을 5초 정도 갱신했다. 슬슬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고 기록 유지에 주력해야지, 계속 갱신을 노리다가는 어느날 길에서 심장마비에 걸려 쓰러질지도 모르겠다고, 죽어라고 달리며 생각했다.
어젯밤에 들은 이야기- 이야기 자체라기 보다는 내 가슴 속을 콜록거리며 지나갔던 이미지들만 늘어세워 본 거지만- 쓰고 나니 지나치게 프라이빗하다고 여겨져 결국은 '비공개' 글이 되었다. 요즘의 블로그는 장마철 노송 뒷편의 버섯들처럼 비공개 글들이 총총히 피어나 있다.
갸륵하고 슬픈 이야기. 어떤 계절을 배경으로 하든간에 사거리에는 몹시 찬 바람 불고 신열에 온통 어지럽고 불길한 느낌이었다. '집 문이 열려있고, 방 문도 또한 열려 있는' 그 어떤 순간.
내가 거푸 '미안하다' 말한 것은 그때, 그곳에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상당히 말이 안돼서 구구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나에게 주어진 짐이었다면. 게다가 내 자신이 이 모든 과거, 그녀가 겪은 경험의 수혜자가 될지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뭐라고 하겠는가. 이제와서는 잘된 일이라고? 그건 순전히 내 입장에 불과하다.
결국 이 관계는 나 혼자 고민 많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몇번이나 본인에게 지적받은 것처럼) 지난 후에 끄집어내도 나 혼자 뒷북치는 셈이 되고, 그냥 그녀, 그때의 기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온당하다. 나는 느린 편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 한편 스스로 역정을 내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는데 이거 정말로 이러다 큰일나지 싶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거 아닌가도 의심해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근거없는 호의는 어디서 생겨난단 말인가. 어제는 그녀에게 주차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는데 '핸들을 이빠이 돌리세요'란 말을 첫번째가 아니라 두번째 들었을때 마음 속 어딘가에 있는 커다란 벽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차 앞뒤의 거리를 알 수 없어 자꾸만 머뭇거리는 나에게 '괜찮으니까 앞으로 가라'는 말에는 엄청난 고마움도 느꼈다. 그녀는 그녀가 내게 만드는 파문의 크기를 짐작도 못하고 있다.
# by 준치군 | 2007/05/08 07:13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5월 04일
사랑은 건강에 좋고 실연은 건강에 좋지 않다. 건강 조심해야지.
# by 준치군 | 2007/05/04 06:03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5월 03일
(2006.04.27 - 2007.04.27)
소설은 거의(전혀) 진행되지 않았지만 소설을 배양할 수 있는 경험은 조금 쌓였다는 느낌. 바지 31인치. (-5) 직장생활 1년 7개월째. '주니어' 딱지를 떼게되는 3년차까지 1년 5개월 밖에 안 남았음. 담배를 끊은지 만 11개월(실은 27일에 하나 폈으니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3 Miles Run 최고기록은 22분 51초. 여자친구 없음. 성당에 (가끔씩은) 나가면서 아는 한국사람들이 늘어났다. 베르위크, 아직도 14장 5턴.
그 외에도 이것저것 있을 것 같은데 좋아하는 사람에게 계속 거절당하면서 결산을 내자니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느낌. 흑자인데도 인플레이션에 의해 적자나 본전치기나 다름없다는 기분이다.
다른 실연들은 곧잘 받아들이고 넘어가곤 했는데, 이번 것들은 도대체 뭐가 다른건지.
나는 여전히 매료되어 있다.
# by 준치군 | 2007/05/03 05:41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26일
어제 뒷마당에서 봄청소하다가. 노을질 무렵 전후인데 빛 좀 받았다. 그러고보니 부모님이 선보기용 사진을 달라고 성화가 심해서(이건 옷 입은게 후지다고 낙방 -_-) 주말쯤에 사진들 좀 찍고 생전처음으로 디카를 인화해서 보내드려야 할 모양. 별 것도 아닌데 우리 부모님 동네(셰익스피어)에 사는 아저씨가 계속 졸라서 어쩔 수 없다나.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광고'용 사진을 만들어둬야하니까 겸사겸사 하는 일이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 by 준치군 | 2007/04/26 22:56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24일
더러는 단번에 끊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독한 놈들도 있기는 있겠지만 내 경우, 담배를 끊게 되기까지는 대여섯번, 끊었다 피웠다 끊었다 다시 피웠다 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안 피우는 주기가 점점 길어지더니 결국 아예 안피게 되는 것이다. 아마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또 담배에 손대게 될 날이 오리라 짐작은 하고 있지만 아무튼 나의 마지막 담배는 작년 5월. 그리고 그 전에는 또 약 삼개월간의 금연기간이 있었다.
남녀간에 이별하는 것도 그와 대동소이할거라고 언제나 생각해왔다. 단번에 되기보다는 결심의 실천과 유예가 번갈아 이루어지다가, 어느날, 살다보니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그만 두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한 버릇을 다른 버릇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 두가지는 비슷하다. 심지어는 연애란 것도 결국 하나의 습관이 아닌가 말해보기도 한다. 혹은 중독.
어제는 평상심에 대한 것을 생각하다가 추세번뇌와 칠정중 사(思)와 상사병 등을 거쳐,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내 삶이 얼마나 편할까' 하는 것에 도달했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것은 내가, 내가 바란 것을 얻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불과 수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봐도 닭집에서 닭먹으며 친구에게 '아무나 좋으니 좋아할 사람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제길' 투덜거리고 있지 않았던가. 생기면 생긴대로 불평하고 없으면 없는대로 불평하고 있을 테니, '이래도 불만이고 저래도 불평이네-'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아아- 삿된 인간이여.
오늘도 (조금 멀리 돌아가긴 했지만) 좋아한다고 했더니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미안하다'는 식으로 퇴짜를 맞고, 지금까지 이렇게 거절당한 횟수를 세어보니 다섯번이나 여섯번쯤 되는 것 같다. 그보다 많을지도 모르지만 기억에 없다. 거절당하는 자체가 싫었던 적은 없고, 나는 단지 그녀가 시간을 때우는 상대라고 판단될때가 가장 괴로운 것 같다. 애인이 아니라도 나에게 매겨진 우선순위가 높다면 나는 만족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이런 불만과 분노가 역으로 그녀를 더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되다니 어처구니없다. 알면서 이런 악순환을 순순히 따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별 수 없이 이성과 그녀가 시키는대로 하는 수 밖엔. 자꾸 끊다보면 영영 끊게 되는 날이 오겠지.
# by 준치군 | 2007/04/24 07:01 | 트랙백 | 덧글(2)
2007년 04월 21일
메디컬 드라마인 '하우스'를 보고 있었는데, 오늘 본 에피소드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 (물론 내 인용은 항상 틀리다)
"...이건 고통에 대한 얘기가 아니에요. 마음을 연다는 것,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한없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 모든 약점을 드러낼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 안심할 수 있는 것. 당신은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 있나요?"
내가 누군가에게 나를 완전히 열어보인 적이 있던가?
누가 나를 마음껏 상처입힐 수 있게 놓아 둔 적 있던가?
# by 준치군 | 2007/04/21 10:32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21일
<2007년의 독서>
01. A Game Of Thrones - George R.R. Martin 02. A Clash Of Kings - George R.R. Martin 03. A Storm Of Swords - George R.R. Martin 04. 모략 - 차이위치우 외 34인 05. 미녀들의 신화 - 김남석 엮음 06. 귀신잡는 남자 - 박용운 07.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화가 이중섭 생각] - 김광림 08. 시인을 꿈꾸는 나무 - 미셸 뤼노 08. 음식 궁합 - 유태종 09. 이런 사원들이 문제사원들이다 - 김광경 10. 증상으로 아는 성인병 - 니타이 후지오 11.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12. 어, 그래? - 이종주 김경훈 편저 13. 125세까지 걱정말고 살아라 - 유병팔 14. 마지못해 한 이혼 뜻밖의 행복 - 조재구 15.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뜨면 - 조진태 16.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 엄홍길 17. 우리 한때는 별이 되었나 - 차범석 외 40인 18. 성공을 위한 히트 유머 시리즈 - 웃음을 찾는 사람들 엮음 19. 법정에 나타난 인생풍경 - 김대억 20. 흐르는 세월을 붙들고 - 이동렬 21. 우리 동네 아이들 - 나지브 마흐프 22. 우리가 산다는 의미는 - 유경환 23. 유령신사 - 시바타 렌자부로 24. 기계 - 남상천 25. 바스카일가의 사냥개 - 코난 도일 26. 걷기건강 - 안상욱 27. 솔직한 여자가 사랑도 잘한다 - 이은미 28. 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 이기담 29. 몽골의 초원 - 시바 료타료 30. 바깥 사연들 - 김성일 31. 노태우 대통령전 - 왕옥흔(王鈺欣)*
<읽다가 그만두거나 아직 못 읽은 책, 하지만 도서관에 갖다 줘야 하는 책> 01. 바둑실력테스트 3 사활의 급소 02. A Feast For Crows - George R.R. Martin 03. The Scarlet Gang of Asakusa - Yasunari Kawabata 04. Beauty and Sadness - Yasunari Kawabata 05.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중국인이라 발음을 알 수 없어 한중병기
# by 준치군 | 2007/04/21 08:51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21일
아직도 나무들에 새 이파리 나지 않았으나 햇볕은 따사로운 며칠간. 이제는 겨울까지 눈이 오지 않을지도 몰라, 생각하며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건너편 빌딩 콘크리트 지붕이 눈부시게 빛나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은 김광민의 'Rainy Day'.
노래는 우울하게 시작하지만 자조 가운데 따스한 미소 섞이고, 마치 '모두가 괜찮아-' 말하는 것처럼 긍정적으로 끝나서, 나 자신은 꽤 즐겨 듣는 편이다.
어제 오후에는 회사에서 내 지난 일년간의 실적을 종합하는 개별리뷰가 있었는데,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였으나 최종적으로는 '좀 더 발전이 필요하다' 라고 채점되어서 조금 낙담하긴 했다.
리뷰는 7가지 카테고리와 총평, 향후 개선할 점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 일곱가지 카테고리는 다음과 같다.
Job Knowledge - 기술에 대한 지식과 계획을 실제로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 Quality of Work - 수행한 업무의 질 Adaptibility/Dependability - 업무에 대한 유연성과 나에 대한 신뢰도 Initiative/Problem Solving ability - 문제해결 능력과 솔선성 Time Management - 시간관리 능력 Leadership/Interpersonal Skills - 리더쉽과 인간관계 Professialism - 프로페셔날리즘
각 카테고리는 매니져(내 경우는 리드 프로그래머인 JP)의 코멘트와 채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점수는 ABC가 아니라
Below Expectations - 기대이하 Improvement Required - 향상요 Solid Performance - 쓸만함 Above Expectation - 기대이상 Exceptional - 굉장함
가운데 하나를 체크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받은 리뷰를 종합해보자면:
Job Knowledge - Solid Performance: 프로그래밍 능력도 좋고 엔진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데 더 효과적인 팀원이 되기 위해서는 계획성, 특히 계획을 문서화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 Quality of Work - Improvement Required: 앞서 말한대로 미리 계획을 세워 일을 진행시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한 것 때문에 업무를 연계하는 경우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맡게 될 경우) 힘들어진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Adaptibility/Dependability - Solid Performance: 여러가지 프로젝트에서 여러가지 일을 한 '적응성'이나, 일이 있으면 늦게 퇴근하게 되더라도 시간을 투입하는 내 태도가 좋다고 했다. Initiative/Problem Solving - Solid Performance: 어려운 문제들을 잘 해결했고 문제 파악도 빠르다고 했다. Time Management - Improvement Required: 내가 하는 업무들을 1, 2주일 먼저 스케쥴해서 그에 걸리는 시간까지 한시간 단위로 계획하는 능력을 배양하라고 했다(이건 내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를 포함해 팀 전체가 앞으로 그렇게 하자는 얘기). Leadership/Interpersonal Skills - Improvement Required: 좀 웃기기는 한데, 질문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직접 가서 물어보는게 아니라 이메일을 이용하라는 얘기였다. 직접가서 물으면 나한테는 좋지만 다른 사람은 업무의 리듬이 끊긴다나. Professionalism - Solid Performance: 사무적인 효율이 있었고 열심히 일했다는 말.
그래서
Overall Performance - Improvement Required: 이것저것 내 칭찬을 한 다음에(아픈 얘기를 하기 전엔 항상 칭찬이다) 내가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성토당했다. 코드부터 바꾸는게 아니라 우선 이해하고, 계획하고, 내가 한 일이 다른 부문까지 끼치는 영향을 고려한 후에야 코드를 쓰기 시작하라는 얘기. 그 외에 중요한 업무나 질문은 문서화하는 습관을 기르고, 자기 관점만 밀어붙일게 아니라 한번쯤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묻고 들어두는 것이 좀 더 타당한 문제해결 방식이 될거라고 했다.
최종적으로는 Solid Performance와 Improvement Required의 사이였다면서, 그래도 분발하라는 뜻에서 낮게 했다나.
아무튼 다음 1년간 회사에서 짤리지는 않을 모양이다.
# by 준치군 | 2007/04/21 00:55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20일
윤석이의 초대로 다음주 화요일에 검도도장에 나가게 되었다. 오늘 전화로 얘기하던 중에 해성이도 같이 가보는 것으로 꼬셨다. 우선 일주일간의 시험기간을 갖고, 마음에 든다면 꾸준히 계속해볼 생각이다. 월회비가 좀 비싼 편이어서(내가 나가는 헬스클럽의 두배가 넘는다) '어째서?' 하기는 했지만,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할 말은 없겠지.
땀 흘리고 좀 두드려 맞고 나면 그간 마음 아팠던 일들, 이겨내고 정신을 수양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뭐니뭐니해도 나는 그녀를 꽤나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담배를 끊는 것처럼' 쉽게 될거라고는 짐작하지 않는다. 이 모든게 나 혼자 쇼하는 셈이라는 것이 좀 웃기기는 해도.
요즘 나의 운동 스케쥴은 주중 5일, 점심때 3마일(약 5.556 킬로미터?)을 뛰고 그 가운데 이삼회, 밤에 또 3마일을 뛰는 것인데, 검도를 하게되면 저녁 달리기는 검도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다이어트도 최종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현재 몸무게는 70대) 체중감소에서 체중유지로 목적을 바꿀때가 다가오고 있고, 그를 위해 근육량을 늘려 기초신진대사율을 높히는데도 검도가 도움을 줄거라고 본다. 정작 호신술로서의 효용은 잘 모르겠지만...
하긴 이 모든게 일주일간, 시험기간 후의 결정에 달려있는데 벌써 앞서나가 계획을 세우는 것도 섣부르다.
현재, 3마일을 24분 정도에 뛰고 있는데 마라톤은 약 26마일이니까 계속 같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물론 그럴 수 있을리가 없지만) 312분= 다섯시간 12분이 걸린다. 참고로 세계기록은 2시간 10분 30초. 꽤나 열심히 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비교를 해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마치 올림픽 출전 선수 운동화 바닥에 붙은 껌조각만도 못하다는 기분이랄까. 계속 트레이닝을 하더라도 마라톤도 아닌 하프 마라톤에 도전 가능한 날이 오기나 할건지 모르겠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언제 한번 마라톤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더니 댄이 지금 3년간 매년 토론토 마라톤 대회에서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 by 준치군 | 2007/04/20 13:05 | 트랙백 | 덧글(1)
2007년 04월 19일
내가 처음에 내건 화두는 이것이었다.
"원한다고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
원하기 때문에, 원한대로 이루어질거라는 생각을 버려. 무슨 일이 내 희망대로, 나를 위해, 나에게 유리하게 되달라는 바램도 말아. 오로지 순리는 순리대로 흐르고, 그렇게 될 일이 그렇게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으며 결국에는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원한다면 대체로 무엇이든 가질 수 있으며 가능한한 모든 것들은 가능하다. 사람이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했으며, 인간의 의지는 큰산을 없애고 작은 바다를 메울 수도 있다.
단지 모든 일에는 치뤄야 하는 가격이 있다.
그리고 때때로 그 가격이 나 한 사람의 일생과 목숨을 초과하는 경우도 많겠지. '가능한 일'들에 대해서만 생각하는데도 말이다.
물론 내가 얘기하는 것은 그렇게 커다란 스케일의 문제는 아니다. 심지어는 중간 규모의 문제도 아니다. 그냥 나를 좋아해주는 이성 만나기가 어렵다는 얘기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더 많은 엇갈림이 있을까- 하는 탄식. 내가 누군가를 지나친 것처럼 누군가가 나를 지나치고, 또 누군가 나를 지나쳐간 것처럼 나는 누군가를 지나쳐 가겠지. 그렇게 상처 주고 상처 입고 때때로 피해자도 되고 가해자도 되면서.
다음에 만나게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머뭇거리면서, 마음은 소나기가 내린 후의 숲길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이렇게 말하고도 얼마후에 똑같은 불평을 하겠지.
# by 준치군 | 2007/04/19 06:57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17일
토요일에는 '08 소대'를 구입해서 열 몇편의 에피소드들을 이틀에 걸쳐 다 봤다. 오랜만에 실망없이 본 건담.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주된 스토리는 사랑 이야기여서 (건담치고는) 신선했고, 살짝 유치한 바 있지만 그런대로 탄탄한 전개와 역사의 주연들이 아닌 일반병들의 생활을 조명해주었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거야 각설하고.
중간에 '상대가 받아들여주지 않는 나의 마음'에 대해서, '어쩔 수 없잖아. 계속 내 마음을 그를 향해 던져보는 수 밖엔' 여자애가 말하고 남자애가 동감해서 나도 역시 살짝, 감동했었는데 이야기가 끝나고 보니 그렇게 말한 녀석들은 (두 녀석 다) 전부 짝사랑으로 끝나고 그 간절한 마음들, 전혀 보상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인생, 이랄까.
# by 준치군 | 2007/04/17 06:15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14일
그가 있을때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없을때 그를 칭찬해주고, 그가 어려울때 그를 도와주라.
# by 준치군 | 2007/04/14 07:01 | 트랙백(3) | 덧글(1)
2007년 04월 13일
이번주부터 실천하고 있는 것은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한 시간 일찍 퇴근하기'.
기존, 아침 열시까지 회사에 도착해서 오후 일곱시쯤 퇴근하고 있던 것을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이제 고작해야 4일째이므로 성공 실패를 논할 수도 없고 앞으로 계속될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지만 벌써부터 바뀐 스케쥴의 장점들은 느끼고 있다.
1.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여덟시 기상이던 것을 일곱시 기상으로 바꾼 것 만으로도 하루를 길게 쓸 수 있다. 또한 간혹 아침에 일찍 일어났을때 시간을 어영부영 때우는 일이 없어진다. 생활 전반에 걸쳐 게으름이 줄고 부지런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건강/미용에 더 좋은 것인지는 임상을 해봐야 알 수 있겠다만.
2. 이동시간이 빨라진다.
아침 저녁 러쉬아워에는 사람들이 붐비기도 하지만 전철과 버스의 수와 빈도가 많아서 출퇴근 시간이 절약된다. 버스 한대를 놓치면 다음 버스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하루 최대 한시간 정도 벌게 되는 셈. 전철 갈아타는 시간, 전철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쳐서 덤으로 또 받는다.
3. 아침/오후 근무의 균형
12시에 밥을 먹는다고 가정할때, 점심식사전 두시간, 점심식사후 여섯시간의 불균형을 식사전 세시간, 식사후 다섯시간으로 경감한다. 이것만으로도 오후를 견디기가 훨씬 수월하다. 밥을 좀 늦게 먹어 1시로 하면 전후는 네시간 씩으로 불균형은 완전히 해소될 수 있다.
4. 작업능률향상
아무래도 내가 가장 일하기 좋은 시기는 자정 이후에서 정오까지의 절반인듯 한데(올빼미, 아침형 둘 다 가능) 적어도 이 시간을 더 업무에 사용할 수 있다면 회사에게 득이 되고 나에게도 득이 된다. 또 아침에 일을 많이 해두고 나면 오후에는 속 편하게 지낼 수 있다.
5. 인간다운 생활의 영휘
평일, 술집이나 편의점을 제외한 상점들은 모두 아홉시 정도에 문을 닫기 때문에 종전처럼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여덟시 반이어서는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처지에 자주 놓이게 된다. 저녁 일곱시에서 일곱시 반 사이에 집에 오는 것 만으로도 '적어도' 식료품 장보기 정도는 가능해진다. 그리고 저녁에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이 많아지는 것도 플러스. 사람을 만나도 출근전에 만날 것이 아니니까 출근전 시간보다 출근후 시간이 효용도가 높다. 저녁 약속을 해도 인간다운 시간에 먹을 수 있게 된다.
6. 농땡이/지각 오케이
우리 팀 사람들은 대개 아침 열시에서 열한시 사이, 드물게 혹은 자주는 열두시까지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아침 아홉시라고 정해놓고 조금 늦어도 아무도 모른다. 며느리도 모른다. 물론 자유출퇴근이므로 '10-7'이나 '9-6'이나 스스로 세워둔 규칙을 따르는 것 뿐이지만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때의 찝찝함도 아무도 몰라서야 덜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말단이니까 성실함을 위해 늦게 퇴근해야지' 헀던 것도 일찍 출근하는 것으로 보상(또한 스스로에게)하고 떳떳하다.
7. 일곱번째 이유
일곱번째 이유는 당장 딱히 생각이 안난다. 그러나 '7'이라는 숫자에 얽힌 좋은 느낌과 좋은 의미들을 감안해서 그 자리에 무언가를 놓아두긴 한다. 그러나 과연 내가 다시 이 잡담을 재방문해서 일곱 이유를 채우게 될 날이 올지는 정말 미지수. 결과로 창작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다른 여섯가지 이유들을 합친 것보다 훨씬 기쁘고 보람있고 가치있는 이유가 될텐데 말이다.
# by 준치군 | 2007/04/13 00:47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11일
가만히 내민 손은 서늘하고 축축했다. 그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 잡아당겨 장심(掌心)에 입 맞췄다. 숨을 깊이 들이쉬자 역시 서늘하고 젖어있는 체취였다. 그녀는 그의 행동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멀리서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 by 준치군 | 2007/04/11 12:11 | 트랙백 | 덧글(1)
2007년 04월 10일
문제가 있다면 문제의 근원을 없에는 것이 곧 '문제의 멸절'.
부활절 연휴 동안은 부모님 집에 돌아가서 가게일을 하고 피곤에 절은 몸으로 일요일 자정이 넘어서야 토론토에 돌아왔다. 귀가길에 동행하던 사촌동생들과 잠깐 '단계라는 문제'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뭐, 대화라기 보다는 혼자 말하다 혼자 답내고 있었다고 할까.
(기본적으로 목요일에 하던 얘기)
"...상대를 목표라고 생각한다면 목표를 달성한 후의 허무를 어떻게 감당하냐? 그러니까 처음부터 사람을 목표로 만들지 않아야 하지 않겠어?"
목적이 아니라면 과정이랄까.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보는 사람'?
그런데 오늘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이 글을 쓰고 있자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좋아한다는 것은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고 '누구에게' 가까이 한다는 것 자체가 목적어를 가지고 있는 말 아닌가?
# by 준치군 | 2007/04/10 03:21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06일
'남녀가 사귀는 단계'(혹은 그런 류의 제목의) 라는, 인터넷 상에서 흔하게 도는 자료를 읽어보았는데 과연 많은 경우에 대체로 들어맞을 법도 했다. http://cyplaza.cyworld.nate.com/10410/20070404091014538237요약하자면 열심히 뒤쫓아가 정복하고 나면 시들하게 되는 남자의 감정과 그에 반해 천천히 달아오르는 여자의 감정 사이에 간극이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가슴 아픈 비극들이랄까. 내 나이 서른 정도 먹고 나니 좀 뻔하게 느껴지고 '뭘 새삼스럽게' 소리가 나오긴 하는데, 그래도 주의를 가지고 읽어보고 스크랩까지 해두는 것은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서다.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타산지석(사실은 자산지석이기도)을 삼겠다는 결심. 일전에 효진이와 얘기할때도 나왔던 얘기지만 연애에 대한 내 방침은 '특별히 잘해주지는 않겠다. 대신 시종일관하겠다' 인데, 그때 그녀는 내가 평생 사람 만나기 힘들거라면서 '너는 너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되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네가 상대에 맞춰서 변하기도 해야 하는거 아니냐' 충고해줬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속으로 '과연 그렇기도 하군' 동의했다. 그때 그녀가 무슨 변화를 뜻했는지, 내 자신이 무슨 변화를 고려했었는지의 문제는 다음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재빨리 문제의 요점으로 돌아가자. (조금 있으면 퇴근해야 함) 사실 시작이 있는 것에는 모두 끝이 있는 법. 달도 차면 기울고 가세도 오르면 내리고 국가도 흥하면 망하고 모든 태어난 것들은 죽는다. 중국 옛말에 '용은 정점에 오르는 것을 경계한다'라는 것도 있고 중국에서 '9'라는 숫자를 싫어하고 '8'이 길하게 쓰이는 것은 9가 완전수인 10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완전을 경계하고 일부러 부족함, 아쉬움을 남겨두어야 한다고나 할까. 이는 인생의 목표에도, 다이어트에도 적용된다. 상대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재앙의 근원으로서, 한 사람에게는 긴장을 잃게 하고 또 한사람에게는 집착하게 만든다. 사실 처음부터 내 것도 아니었고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의 그런 착각이 사실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연애란 착각 아래에서 이루어진다'라는 문장의 진실이 빛난다. 근데 퇴근해야겠다. 단계라는 문제는 좀 더 생각해보자.
# by 준치군 | 2007/04/06 06:06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05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우울한 날에는 가만히
좋은 날 오는 것을 믿으라
마음은 내일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덧없고, 모든 것은 사라지며
지나고 난 후엔 그리워지리
-알렉산데르 푸쉬킨, 1825 -한역: 2007 (참고는 Gurarie와 Kneller의 영역본)
# by 준치군 | 2007/04/05 00:11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03일
'만월이 아스팔트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붉은 빛'
집에 돌아오니 준영이가 메세지하기를, 신영이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자리에 모였었다고 한다. 그 전날 반창회를 소집한다며 열심히 돌아다니더니, 그 다음날에는 아버지가 그렇게 되셨다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들었는데, 올해 결혼하는 동창들이 많다고 했다. 누구누구냐고 물었더니 신영이, 성인이, 혜연이라고 하더라.
슬픔은 모종의 상실에 대한 아쉬움이나 안타까움.
슬픈 생각들의 결과.
# by 준치군 | 2007/04/03 16:23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03일
동창 이유진이 작년 5월에 결혼했다는 것을 올해 4월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10년이거나 15년 전의 일이지만 (어느 버스에서 보았던 것 같다는 기억이 사실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여전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런데 일년이나 지나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혼자 너무 뒷북치고 있다는 느낌이고, 의미심장은 의미심장인데 석연찮은 아쉬움과 아이러니가 칵테일처럼 뒤섞여버린다.
그녀는 반의 아이돌이었고, 오랫동안 상당히 많은 남자아이들의 연모대상이자 고지 위의 꽃 같은 존재였다. 반 여자아이들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질시의 대상이었다는 기억은 없으므로 그쪽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른다. 하얀 피부에 예쁜 얼굴, 긴 생머리와 얌전한 성격, 조용한 목소리. 그녀를 중심으로 다른 공기가 떠돌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특별한 아이였다. 부드러운 눈이 너그럽고 어른스러운 느낌을 주어 한층 더 우러르게 되었는지 모른다. 소녀의 아름다움이란 나이와 더불어 허물어지거나 변해버리기 일수지만 투명한 느낌을 주는 그 내외면의 미모, 언제까지라도 시들지 않을 것 같았다.
조숙한 편이라도 이제 막 이성에 눈뜰 나이고 보면 정작 별일은 없었겠지만 문득 어느 누가 그녀를 두고 애태우는 밤들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학년이 시작되고 한달쯤 지난 4월 초에 누군가의 생일이라 반 남자애들이 잔뜩 모여서 노는 가운데,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가' 질문이 나왔더니 줄줄이 줄줄이 그 여자애 이름을 대더라는,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실화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성격이었는지 이런 문제로 경쟁이라면 딱 질색인 나는 아마 다른 이름을 대었을 것이고(근데 그게 확실치는 않다) 실제로도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정을 주고 나중까지 이어지는 웃기는 짓들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건 또 다른 얘기.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달용네 반'이라고 부르던 '6학년 2반'은 화기애애하고 재밌는 나날의 연속이어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다지 없었을 '학교 가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휴일과 방학이 싫다'라는 말이 서슴없이 사람들 입밖으로 나올 정도였다. 세상의 고통을 혼자 다 짊어진 듯 존재의 유한성에 대해 번민하던 나도 그랬었으니 거의 예외없이 그랬을거라고 짐작은 해본다. 누군가 따돌려지거나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았고 어느쪽이냐면 잘사는 축에 속할 커다란 아파트 촌, 온실 속에서 고만고만한 귀여운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났다. 공부는 쉬웠고(당시엔 몰랐지만) 몇몇 친구들이 그룹을 만들어 항상 어울려 노는 것이 재밌었고 (키 순서로 땅콩, 개구리, 준치와 맹가였다) 여자애들은 예뻤고 (마치 꽃처럼) 선생님은 유쾌했다. (물론 뺨다구를 얻어맞은 나는 입조심의 교훈을 얻었지만) 상당히 못생겼는데다가 성격도 뒤틀려있던 나는 인기라곤 전.혀. 없었고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에 카드 한 장 받지 못했다는 것이 신경이 쓰이긴 해도 이제와선 쓴맛도 다 빠진 기억이다. 15년 이상이나 지났으니 누군가 '나 그때 너를 좋아했었어' 라든가 '싫지 않았어' 라는 말을 듣는다면 좋기는 하겠으나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며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의 리스트에 추가해줘야 한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불과 그 1년 전부터 남녀공학이 된 오륜중학교에 배정받은 나는, 그래서 중학교도 그녀들과 동문이 되지만 실제로 이유진이라든가, 다른 이들과 말을 해본 기억은 없다. 여자반의 단체사진등을 통해서 하나같이 단발이 된 근간의 사진을 보기도 하고, 호르몬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지 이마에 여드름 온통 돋아난 모습을 점심시간 복도에서 보기도 했으나 고작해야 서너번일까. 아직 여자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던 시절이고 내 중학생활은 꽤나 다사다난했다. 실제로 국민학교 동창들이 서로 연락하고 만나게 되는 것은 내가 캐나다로 이민간 이후의 일로서, 첫모임이 고2와 고3 사이의 겨울이었는지 수능이 끝난 이후의 고3 말년이었는지 전해들은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이유진이라는 고유명사에 의미가 더해지게 되는 것은 국민학교 졸업 이후 수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녀를 잊지 못했던 내 친구 때문으로, 물론 아무도 그녀를 잊지는 않았겠지만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녀를 다시 보자 옛 감정이 모두 솟구쳐올랐다'고 녀석의 편지는 말했다. 그 후 몇개월(내지는 한달 정도의 기간)에 걸쳐 녀석은 나름대로 대쉬도 하고 전화도 하고 편지도 쓰고 데이트를 해보기도 했으나 끝내 '우리는 아직 어린 것 같다'라는 숙연한 이유를 듣고 아프게 퇴치당한다. 둘 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것 같으니 서로 어렸던 것은 맞는데, 그렇다면 이것들은 내가 해외로 떠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동창회를 획책한 셈이 된다. 아무튼 감히 우리 모두의 우상에 도전한 말로로서 고소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보다는 내 친구에 대한 동정이 앞섰다. 나 역시 오랜 짝사랑의 와중이었고 좋아하는 마음이 보답받지 못하는 고통은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이 친구를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에 '만약 그녀를 누군가에게 주어야 한다면 녀석에게' 정도의 속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후 친구는 여러명의 여자친구들을 사귀고 몇번인가는 심각한 사이까지 가기도 했으나 친구나 지인으로서 이유진과의 관계는 끈질기게 유지했다. 가끔 얘기를 할때면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는 것도 모두 그를 통해서였다. 취업난인데 대학 졸업하고 SK에 취직이 되었다느니, 일하고 있는가 했더니 그만두고 유학을 간다느니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의 결혼 소식은 듣지 못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들었는데 내가 잊어버린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쪽이든 반창회 날짜관계로 투표를 하라고 해서 클럽에 갔더니 그 조금 밑에 작년날짜의 청첩장과 초대의 말이 적혀 있었다. 살짝 놀라며 사진 게시판으로 갔더니 제일 위에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모두 정장을 입고 있는 동창들의 사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모두 친숙한 얼굴들이고(특히 남자들 얼굴은 안변하는 듯) 누군지 모르겠는 사람은 하나 밖에 없었는데, 아무튼 한 가운데 꽃같은 신부, 십수년만에 보는 사진임에도 역시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진이 계속 바뀌는 통에 자세히는 못봤지만 고유의 깨끗한 느낌만은 여전했다. 친구는 불참했는지 어디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는데, 참석한 동창의 숫자가 적기도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작년 오월의 신부는 그렇게 남의 사람이 되어서
뒤늦게야 느끼는 청춘의 저물녘
먼 곳 내 친구 독작한 자리
# by 준치군 | 2007/04/03 05:51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4월 01일
요즘엔 이상한 일들 투성이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설래설래 내젓는다. 이거 이러다 큰일나지, 싶기도 하다.
분명히 열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살아가는 동안 어떤 사람의 크기는 점점 더 커져서, 이제는 그 부피와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아니지만 세번째, 네번째나 다섯번째는 되고, 밤에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생각은 아니지만 '생각하지 않는게 좋겠지' 하면서 어느새 생각하고 있다. 하루를 통해서 문득 그녀를 떠올리는 횟수는 얼마나 될까.
그게 그렇다고 좋은 생각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갑자기 정지하는 느낌. 오래되고 후진 비디오의 'Pause' 버튼을 누른 것처럼 살짝 흔들리듯 멈추어 선다. 이야기는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거기엔 그녀의 정지된 영상이 머뭇거린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 정말로 가슴아프겠지' 마음 속에서 경계하면서, 회의와 희망이 나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긴다. 아무것도 넘겨집지 않고,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려고 하는 동안에, 미래는 터무니없이 불확실해져서 그에 대해 말할 수가 없게된다. 수없이 많은 평행의 가능성 가운데 무엇 하나 보편타당하다고 집어낼 수 없다. 내 사적인 희망을 개입시켜서는 안되니까.
웃기는 것은 그녀에게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져가는 나 자신이랄까. 바쁘다면 바쁜 것으로 알고, 일이 있다면 있는 것으로 안다. 처음에는 나에게 매겨진 우선순위가 낮다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너무 당연해서 할 말도 없이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나쁜 것도 하루만이지 이틀째에는 다 이해가 간다. 많이 이해할수록 맹목적인 부분이 사라지게 되고, 그것은 무턱대는 열정도 함께 지워지는 셈이겠지만 예상과는 달리 좋아하는 마음도 함께 지워지지는 않았다. '전부 이해를 한다면, 상대를 떠날 준비가 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근간에 읽은 적이 있는데, 그건 사실일까. 확실히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멀리서도 봐야 하고 가까이에서도 살펴야 한다. 이성이 냉정해지다 보면 마음까지 덩달아 차가워질수도 있고, 식은 것이 떠나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걸 말리기도 무엇한 일이다. 연애란 것이 정말로 모종의 착각이고, 이해는 그 깨닳음이라면 그럴 것이다. '연애란 언제나 착각에 의해 성립하는 것- 적어도 여자의 경우에는' 라고 어제 읽던 책은 말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이해'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에게 가까이 가는 길을 만든다는 의미로서의 이해도 아니다. 나에게 있어 그녀는 알면 알수록 미스테리 덩어리고, 사실 전부 파악한다는 생각은 포기한지 오래다. 내가 그따위 노력을 하는 동안에 그녀는 바뀔테고 새로워질테고 예전의 그녀라는 환상에 매달리기 보다는 새로운 그녀와 어울리는 편이 낫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녀를 알아나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녀를 내가 가진 이미지에 맞추어 나가서는 안된다. 내가 이해하게 되는 것은 사건, 그 자체의 온당함이고,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내 자신이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이다. 내가 하는 이해는 마치 그 사람, 머무를 장소를 마음 속에 짓는 것과도 비슷하다.
우리들, 공존하기 위해서.
말이야 거창하게 했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문제다. 혼자 있을때는 궁시렁궁시렁 거리다가도 막상 만나면 반갑고, 목소리를 들으면 무척이나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다. 함께 얘기할때는 밝고 명랑한 것 같은데 그 사람 혼자 있으면 어둠 속을 걷는 것 같아서 대책이 없고, 그러나 모든 것이 성숙의 단계일거라고, 그 커다란 꿈이 드리우는 커다란 그림자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그딴 것은 되고 싶지 않은데 친구라고, 그 이상은 될 수 없다고 한다면 엄청나게 싫을 것 같고(그러나 이 가능성은 지나칠 정도로 농후하다), 그런데 다 집어치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다. 최악의 경우라면 훌쩍 귀국해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정말 가슴 아플 것이다. 그 사람 성격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을텐데, 나 혼자 속상하고 말겠지. 아리랑 고개와 영변 약산의 진달래꽃. 내 어린 마음.
이 정도도 이미 충분히 지나치다. 그러고보니 아직 그녀를 나 혼자 보자고 불러내서 수락받은 적이 없다. 다시 생각해봐도 젠장이로군.
# by 준치군 | 2007/04/01 01:58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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