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13일
어머니날의 전날인 토요일
두명째인지 세명째인지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엄청 반갑게 받아주시고, 통화상대에게 이건 데이트가 아니라고,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도 듣고, 나중에 무슨 얘기였는지 설명까지 추가로 받고, 공원에 가기에 앞서 자기 언동 때문에 상대 남자가 오해를 많이 한다는 말씀이 커다란 현수막처럼 배경으로 깔려있는 가운데, 나의 오해도 이해도 더불어 깊어가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다 잘해주고, 누구에게나 다 잘 맞춰주는 사람. 그 자체로는 칭찬을 받을만한 미덕이겠는데 내 자신이 그 중의 하나가 되어서는 조금 딱한 일이다. 정말 일급의 바람둥이라면 그 사람들 모두에게 상대만이 특별하다는 인식을 남길 수 있을터인데 그녀의 경우는 조금만 수련하면 가능한 경지일 것 같다.
질투를 하자면 속 좀 상하겠으니 건강을 생각하자. 어머니날 선물을 산다는 핑계로 아침부터 불러낸 그녀는 예쁘고 상냥했고, 선물구입 후 밥 먹고 차 마시고 날씨가 너무 좋아 들렀던 공원에서도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내가 생각도 없이 (그리고 사실 계획도 없이) 공원길로 데려갔기 때문에 부숴먹은 구두가 저번에 이어 오늘로 두개째. 하나 선물해야 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경우는 선물이 아니라 배상 아닐까) '내가 고른게 누구 마음에 들리가 없잖아?' 망설여지기는 한다.
여러번 봐도 시들지 않고 그 농도만 짙어가는 그녀에 대한 내 마음에 비해 나는 그냥 '아는 분' 이라거나 '친절하신 분', '너 모르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뿐이고, 나로서는 가까이 갈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일까. 되새겨 떠오르는 지난 하루의 기억은 지나치게 우린 찻물처럼 씁쓸하다.
허나 때때로 산뜻한 웃물보다 앙금까지 남아있는 아랫물에 더 정이 가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일까. 그러고보니 그 마지막 한 방울을 따로 일컫어 '진국'이라 부르지 않던가.
'상사병'을 한자로 '서로 생각하는 병'이라고 쓰는 것은 좀 웃기고 이상한 일이다. 마땅히 항상 상자를 써서 '항상 생각하는 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거기엔 내가 모르는 배경이나 숨은 의미라도 있는걸까?
오늘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가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숲길을 걸을 수 있었으며,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 맛을 궁금해해왔으나 딱히 계기가 없어서 여태까지 사진으로만 봐온 고구마 케이크란걸 실제로 시식해보기도 했다.
'먼 먼 옛날의 풍뎅이 죽음에도 같이 울면서'.
고맙습니다. 하이구.
# by | 2007/05/13 14:56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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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다 잘해주고 친절한 사람 있잖아요. 정많고 착하고.. 근데 그런 사람들보면 대개가 이성쪽에서 열을 올리더군. 나와 그 누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때문에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차이에 대한 물음은 결국 나를 향한 그의 마음에 확신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가족의 탄생"을 한번 보세요. 작년에 나온 한국영화에요. ㅋ
앨리님, 아마도 그쪽은 아닐겁니다. 누군가 늘 자신을 좋아해주는, 그런 사람을 계속 만나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운명이란게 있더군요.
확신이 없다면 없겠지만 그보담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 후에도 관계에 발전이 없다는 것이 더 속상한 일 같아요. 이렇게 얽히면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냥 운이 나빴다고 투덜거려야죠.
제가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도 좋아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